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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영화를 찾아서


<러브레터>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박경미 | 2004년 01월 09일
조회 6502


단언컨데, 이 영화는 결코 숨겨져 있는 영화는 아니다. 개봉 이전부터 <러브레터>는 '이와이 슈운지'의 숨은 팬들을 형성하고 있었고, 개봉 후에도 비교적 흥행한 일본 개봉 영화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다시 끄집어 내는 이유는, 이 영화가 흔히 알려져 있듯이 알아채지 못했던 지난날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나 찡한 감동으로만 지나치기에는 안타까운 숨겨진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이 슈운지가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러브레터>는 다른 곳에 사는 얼굴이 같은 두 여자가 죽은 한 남자에 관한 추억을 공유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감과 전이에 관한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얗고 깨끗한 눈의 이미지를 영화 곳곳에 담고 있지만, 영화의 소재는 '죽음', 곧 지금은 이곳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의 죽음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마치 눈처럼 산산히 흩어져서 지는 벚꽃처럼 죽은 자의 기억이 여기저기 흩어져 산자와 조응하는 기묘한 영화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살아있는 자-여자 후지이 이츠키와 와타나베 히로코-와 죽어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자-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아버지와 남자 후지이 이츠키-로 나누어져 있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것은 '기억'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끝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작용을 하는 후지이 이츠키의 모습이 그려진 책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 이츠키와 히로코가가 공유하고 있는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기억은 차이가 있다. 죽은 남자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히로코는 죽은 이의 기억을 잊으려 노력하며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지만, 이츠키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노스탤지어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츠키가 새롭게 자각하게 되는 사랑과 기억은 이미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자, 이미 끝나버린 죽은 자의 고백이다. 죽은 후지이 이츠키와 살아남은 후지이 이츠키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랑의 기억은 다분히 비관적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이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회상하면서 불현듯 이츠키가 소년이던 후지이 이츠키를 처음으로 떠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어릴 적 사망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후지이 이츠키의 죽음은 끊임없이 겹쳐든다.

그러나 이렇듯 망자들이 부유하는 <러브레터>가 칙칙하고 우울하지 않게 '사랑의 편지'를 전해주며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것은 영화속 공간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다. 영화 속 공간의 지리적인 의미를 탈색시켜 버리는 이와이 슈운지에게 영화의 배경은 그것이 동경이든 오키나와이든 오타루이든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가 영화에서 등장시키고 있는 눈 덮인 훗카이도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공간이다. 이미 죽은 아버지와 알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풋사랑이 등장하는 이곳은 기억 속의 인물들이 버젓이 살아 움직인다. 마치 만화와도 같이 예쁘게 짜여진 미장센들은 생사의 경계가 묘연한 경계 위에 영혼들이 떠도는 노스탤지어의 공간으로 환원된다. 그러므로 실상 이와이 슈운지의 영화를 지배하는 환타지는 죽음에 관한 기억들인 것이다.

<러브레터>가 '잃어버린 시간'에서 찾은 것은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다. 이츠키와 히로코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오고가는 답장으로 인해 떠올리게 되는 기억들은 이 두 여자가 씻어내지 못했던 상처였을 지도 모른다. 히로코가 알게되는 후지이 이츠키의 기억은 그녀를 그 기억에서 자유롭게 놓아주어 새로운 사랑을 하게끔 도와주고, 죽은 남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츠키는 그로 인해 죽은 아버지의 기억에서 자유로와 진다. 죽은 자를 통해 불려진 기억은 살아남은 자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을 치유하기도 한다.






박경미
진정한 씨네필로 남고싶은 '열혈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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