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유쾌한 불협화음

리뷰

<클래식> 유쾌한 불협화음 :::

★★★1/2

윤현호 | 2003년 02월 04일
조회 3581
스크랩 1

영화 <클래식>은 우연을 가장하고 찾아온 '필연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친구의 애인을 좋아하고 있는 지혜(손예진)는 고백하지도 못할 답답한 짝사랑을 하고 있죠. 어머니의 물건을 정리하던 중에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빼곡하게 담겨 있는 편지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연애를 포함해서 베일에 가려져있던 남자(조승우)를 알게 됩니다.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했으며 어머니 역시 아버지보다 더 사랑했던 그 남자의 존재를 통해서 숨겨줘왔던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하게 되죠.

1. 촌스러워서 사랑스러워.

"에이, 촌스러워.. 아니야. 그냥 클래식하다고 해 두지 뭐.."

<클래식>의 지혜는 어머니 세대의 편지를 읽으며 '클래식'하다는 표현을 통해서 낡은 시대의 철지난 유행을 넉넉하게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포용할 수 있는 태도에 따라서 유치한 수식 어구로 가득한 연애 편지도 얼마든지 '클래식컬한' 멋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상징합니다. 영화가 노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 곽재용 감독은 지혜의 대사를 영화 초반에 찔러 넣음으로서 관객들에게 보다 관대한 태도를 요구합니다. 극중 대사를 통해서 영화에 맞는 해법을 제시하는 거죠.

덕분에 영화는 동시대의 트렌드를 기꺼이 역행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은 연애 소설의 딱딱한 문어체를 구사하고, 복고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장소- 대표적으로 '소나기 시퀸스'가 그렇겠군요. - 만을 찾아다닙니다. 덕분에 '시대착오'적인 감정이 감도는 <클래식>은 그러나 촌스럽고 유치한 상황들이 빈곤한 연출력의 결과가 아니라 관객을 공략하기 위해 철저하게 의도된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촌스럽거나, 클래식한' 컨셉을 그렇다면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영화는 운명적인 사랑이 손에 쥐고 있는 '비극적인 과정'을 펼치고 있습니다. 준하와 주희는 달콤한 사랑을 나누지만 후에 겪게 될 비극은 사랑의 단맛을 모두 빼 버릴 정도로 혹독합니다. 이들의 비극이 처참하면 할수록 사랑은 더욱더 운명적으로 결속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클래식>에서 비극의 속성은 물에 녹아 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용해되지 않고 굳건하게 남아있는 희극의 강인함 때문일거에요. 이것은 감독의 전작 <엽기적인 그녀>가 관객에게 선택받았던 이유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관객을 유쾌한 감정으로 몰아넣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장점이 코믹적인 상황을 충분히 잘 살려내고 있는 것이죠. 덕분에 영화는 '비극 모드'로 돌입하기 직전까지는 이런류의 연애 영화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2. 불협화음의 '비극 악장'

중반부까지 연주된 경쾌한 '클래식' 선율은 후반부 '비극 악장'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불협화음을 들려주고 맙니다. 이것은 <엽기적인 그녀>에서도 이미 목격된 취약점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군요. '희극'이 비교적 시대를 초월하는 넓은 포용성을 가졌다는 것에 반해, 비극의 정서는 그것을 '신파'라는 부정적 단어로 평가절하 시키듯, 쉽게 받아들여지기 난감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클래식> 후반부 굴곡이 삐걱거리는 이유는 영화의 철지난 감정 때문보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작용한 것 같군요.

바로 '설명 강박증'에 걸려 조급했기 때문이에요. 행여나 관객들이 놓치고 지나가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낸 나머지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장면을 친절한 대사와 세세한 상황 설명을 남발하고 말았어요. 생략과 암시의 능숙한 줄타기를 잘 해 오던 영화가 막판으로 치닫는 런닝타임 때문에 강박증에 걸려 삐그덕 거리고 있습니다. 설명적인 긴 대사가 힘들게 끌어올린 감정의 집중도를 떨어트리는 건 참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배우들

<클래식>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배우는 조승우입니다. 영화가 희극과 비극의 정서 사이에서 방황한 것에 반해 준하를 연기한 조승우의 감정선엔 같은 흐름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비로소 자기 몫을 제대로 보여주게 된 것이죠. 이에 비해 손예진은 <연애소설>보다 극 비중이 커졌음에도 <연애소설> 만큼의 장악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어요. 일인이역보다는 차라리 한쪽 연기만 했다면 연기의 집중도가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군요. 음..조인성에 대한 언급은 가능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브라운관에서의 설익은 연기를 반복하고 있는 이 연기자는 시선 처리나 동작선에대한 기본 사항을 바로잡기에 앞서 발성을 제대로 준비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군요.

Tip

●● 음.. 손예진은 어찌나 <연애소설>적인 행동만 골라서 하는지...

●● 원광대학교, 경희대 서울 캠퍼스 , 경희대 수원 캠퍼스 천문대, 연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새천년홀 들이 <클래식>의 캠퍼스 장면을 위해서 헌팅되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참 힘든 일이군요. ㅡㅡ

●● 개인적으로, 흉가집에서 서로 얼굴 보며 소리치는 장면이 너무 정겨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