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오브 드래곤> 이연걸과 뤽 베송의 실망스런 만남

리뷰

<키스 오브 드래곤> 이연걸과 뤽 베송의 실망스런 만남 :::

강병융 | 2001년 11월 30일
조회 3263

<황비홍>에서의 이연걸은 정말 대단하다. 변발을 하고 날아다니는 동작이 하나 하나가 예술과도 같다. <황비홍> 시리즈가 거듭날수록 그의 매력이 반감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연걸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여전히 '대단한' 혹은 '놀라운'이었다. 꼬맹이 시절부터 중국 무술 영화를 감상해 온 동양인들에게도 그의 무술을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그의 동작은 이소룡의 그것 혹은 성룡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것이었다. 후대의 조문탁 역시 비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연걸은 이연걸이고, 대단함 그 자체였다. 적어도 헐리웃으로 가기 전까지는.

헐리웃에서 이연걸의 데뷔작은 <리쎌웨폰> 시리즈였다. 그는 멜 깁슨에 맞서는 악당으로 나왔다. 성룡이 말했다. 동양인들은 자신이 악당으로 나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그래서 수많은 악역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거절하고 주인공 역할로 헐리웃에 데뷔했다고 했다. 맞다. 나를 포함한 동양인들은 성룡이 백인 혹은 흑인들들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나온다는 상상을 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명랑하고, 천진하면서도 정의로운 역할로 적당하다. 성룡과 달리 이연걸은 악당으로 데뷔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매력 있는 악역이었다. 멜 깁슨을 충분히 주눅 들게 할만한 역할이었다. 이연걸의 데뷔는 비교적 성공적이었고, 힘겹게 박수칠만한 수준이었다. 그 다음 영화는 <로미오 머스트 다이>였다. 그 영화에서 이연걸은 다시 정의로운 이연걸로 돌아왔다. 개봉 첫주 1천8백 달러를 벌러들이는 기염을 토하였다. 이연걸은 미국 사람들도 이연걸을 그럭저럭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영화가 <키스 오브 드래곤>이였다. 뤽 베송과 이연걸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관심거리가 될만한 영화이다. 그 점에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생각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영화가 시작할 무렵 이 영화가 이연걸의 원안으로 만들어짐을 알게 되었다. 뤽 베송은 각본을 썼다. 물론 그가 연출한 영화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뤽 베송으로 이름을 단 영화는 그가 연출한 영화가 아니고, 각본이나 제작을 한 영화들뿐이었다. <더 댄서>나 <택시> 시리즈처럼.

영화는 한마디로 진부하다. 영화를 단 10분만 보면 거의 완벽하게 결말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연걸이 한번 싸우는 것을 본다면, 이연걸에게 절대 위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이연걸을 한마디로 천하무적이다. 이미 우리는 이연걸이 천하무적으로 등장한 영화를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싫증나기 이르렀다. 그는 개폼 잡고, 눈에 힘주고, 주먹을 꽉 쥔다. 그러면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 그에게는 사부나 핏붙이도 없기 때문에 정말 무서울 것이 없다. 박에 박힌 액션이나 단순+지루한 스토리는 이 영화가 액션 영화임에도, 아니 활극영화에 가까움에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시트콤 마냥 극단적으로 과장된 캐릭터들도 관람을 지겹게 만든다. 이연걸, 그리고 프랑스의 잔인한 형사, 브리짓 폰다 등 모두 극단적이 융통성도 없을 뿐더라, 플랫 캐릭터의 전형을 벗어나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혹자가 이런 영화는 다 그런 거다, 라고 한다면 필자 역시 할말은 없지만.

지루한 내러티브와 더불어 이연걸의 연기 역시 짜증을 더한다. 어눌한 영어 발음의 대사, 과장된 동작과 브리짓 폰다를 볼 때, 나오는 어설픈 애정의 눈빛 모두 실망스럽다. 이연걸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형사들 역시 하나같이 극도로 회화되어 있다. 영화 속의 진지함은 온데 간데 없다. 브리짓 폰다의 역할 역시 매우 실망스럽다. 모성애가 가득한 창녀 역할인데, 그다지 모성애가 있어 보이지도 않을 뿐더라, 어설픈 이연걸의 호의에 감동을 받는다는 설정에 그 어설픈 설정을 연기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가상할 뿐이다. 또한 프랑스 형사 반장으로 나오는 역할 역시 소리 지르는 것 빼고, 연기다운 연기는 없다. 뤽 베송이 연출한 <레옹>의 게리 올드만의 역할과 비견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실망스러운 부분은 이연걸과 뤽 베송이 보여준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이다. 동양의 작은 형사가 악당들을 중국 무술로 무찌르는 모습을 서양인들은 오리엔탈리즘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만일 이 영화가 뤽 베송의 원안으로 만들어졌다면, 덜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는 서양 사람이고, 동양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할 것러럼 원안은 이연걸이다. 이것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몰이해 혹은 무책임이다. 그 부분이 더욱 실망을 준다. 더군다나 어설픈 침술은 영화의 백미이다. 짜증을 만드는 백미. 만일 독자 중의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고 '키스 오브 드래곤'의 의미를 알게 된다면, 한번 더 기겁할 것이다.

끝으로 영화 제목을 만들 때, 관사를 넣든지 아니면, 제대로 번역하든지 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작은 바램이다. <키스 오브 드래곤>의 원제는 'Kiss of the Dragon'이다.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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