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순간의 키스, 영원한 사랑

리뷰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순간의 키스, 영원한 사랑 :::

노정규 | 2002년 11월 06일
조회 2698

"새로울 것 없는 관계를 맺는 것은 타성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경험에 앞서오는 두려움과 수줍음 때문이다.
모든 걸 감수할 준비가 된 자만이 살아있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릴케-

여성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더 사랑을 느끼게 되는 '동성애' 현상은 어쩌면 일종의 '트라우마'(trauma: 충격으로 인한 상처, 외상)에서 기인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동성애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탈출구이자 비상구이며 자기의 마지막 보호막인 동시에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는 여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에게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그러한 모티브에서 출발한다.

겉보기에는 뉴욕 트리뷴지 신문사의 유능한 원고 편집자인 기자 제시카는 오랫동안 애인이 없었다는 것을 빼면 남부러울 것 없는 미모의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는 다른 이의 글에서 빈틈을 찾는 자신의 직업처럼, 만나는 남자들마다 결점이 눈에 밟혀 사귀지 못하는 완벽주의자다. 엄마의 잔소리에 늘 시달리지만,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제짝을 찾지 못했다. 만나는 남자들마다 잘생겼다 싶으면 느끼하고, 똑똑한가 싶으면 썰렁하고, 황당한데 쫀쫀하기까지 한 남자들 때문에 맥빠지는 소개팅에 지친 제시카는 어느 날 애인을 구한다는 구인 광고에 평소 애송하던 릴케의 시를 인용한 헬렌을 발견한다. 성에 관계없이 자유분방한 연애를 거쳐온 헬렌은 지적이고 세련된 갤러리 매니저이다. 바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세심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두 사람. 남들에게 들킬까 안절부절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사랑에 빠져든다. 제시카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점점 나타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것이 이 영화의 주요 골자를 이룬다.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를 10년 넘게 만들다가 이 작품으로 장편 극영화에 데뷔한 찰스 허먼-움펠드가 메가폰을 잡았다. 주연 제시카역을 맡은 제니퍼 웨스트펠트는 1971년 미국 코네티컷주 길포드 출생으로 32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 배우뿐만 아니라 헨렌 쿠퍼역을 맡은 헤더 유에르겐센과 함께 공동 각본과 더불어 에덴 움펠드와 제작까지 맡는 등의 1인 3색의 열성을 보였다. 두 여자 주인공이 공동각본을 맡고, 연기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짜임 새있는 극의 전개를 이끌어 낸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현실성과 맞추어 억지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움을 자아낸다.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1997년 가을 뉴욕 브로드웨이의 연극무대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악몽 같은 데이트를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이 영화 속 두 주인공 제니퍼와 헤더의 아이디어가 희곡으로 옮겨진 것이다. 썸머작가 워크숍에서 만난 후, 호흡이 잘 맞았던 그들은 연극이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으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자, 자신들이 쓴 희곡을 직접 영화화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 신선한 발상은 곧 유쾌하게 법석대며 색다른 사랑을 시도하려는 두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변모해진다.

그로부터 4년 후, 그들이 쓴 각본은 전혀 상반된 두 여자의 관계를 통해 어떤 영화에서도 우려내지 못한 독특한 사랑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들의 열정과 재능에 보답이라도 하듯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2002년 봄 미국을 뜨겁게 달구며 6개 도시에서 미국 전역으로 확대 개봉되었다. 이 열기는 영국에서도 이어져 '스파이더 맨'을 바짝 위협하며 박스 오피스 2위를 기록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작품과 흥행성 둘 다를 거머쥐며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받은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한국에서도 부천영화제를 비롯해서 각종영화제를 통해 호응을 얻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정개봉을 한 후에 확대 개봉을 할 예정이다.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상영 내내 관객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자기에게 확실하게 딱 들어맞는 이성친구가 없다는 것에 근거하여 동성친구로 관심을 돌리는 것을 통해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선은 무엇인지를 던져준다. 두 번째는 섹스를 통해 자기의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친숙하고 긴밀해지는 관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과 우리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람들간의 '대화와 관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는 바로 '인간과 사회'라는 화두로 집약된다.

많은 남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무뎌져버린 제시카의 연애관이 헬렌을 통해 '동성애'라는 새로운 사랑으로 급변해 가는 과정이나 권태기에 접어든 헬렌과의 갈등을 통해 '관계'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을 제시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레즈비언들의 섹스만을 영상으로 보여주려는 동성애 영화가 아닌 '인간과 관계'라는 조금은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사회성을 무겁지 않은 헐리우드식 로맨틱 코메디로 영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남자들의 동성애인 호모를 주제로 한 '로드무비'와는 또 다른 성격의 문제를 제기한다.

헬렌을 만난 후 생기발랄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변해 가는 '제시카'
행복해지는 그녀를 보며 슬퍼지던 옛 연인 '조쉬'
제시카의 새로운 애인이며 프리 섹스주의자 '헬렌'
이 3명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예상을 뒤엎는 마지막 결말을 통해 서두에 제시한 리켈의 '관계'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구분시켜주며 정의 내린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이 영화에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재즈선율도 뉴욕 맨해튼 거리와 맞물려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영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지금 늦가을에 우리에게 '인간과 관계'라는 사회 속에 포함되어 있는 외로운 군상들인 '나' 자신을 대변 해주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영화를 통해 포스터에도 나타나듯이 많은 인파들 속에서 제시카 본인이 자기의 정체성을 뚜렷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우리도 '나'라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인간관계가 '용기'라는 힘을 불어넣는 생명수인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문득 생각했다.

노정규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전공
모니터 활동, 명예기자 경험 다수
씨네코아, 아트로드, EBS교육방송, 네띠앙, NATE, M.NET 모니터 요원
국정홍보처, 서울시정, 산업인력관리공단 HRD, 녹색교통협회 대중교통 모니터 요원
야후지기, 천리안 게임 테스터, 중앙일보 헬스케어 명예기자, 조이씨네 명예기자, KMTV 통신원, 연세엽기신문 기자, 일간스포츠 학생기자, 위클리엔터테이너 명예기자, 한겨레 신문사 하니 리포터

노정규 님의 다른 기사 보기 >>

<< 노정규 님과의 대화

Readers' Comments

내 의견 쓰기

More Articles to Explore

<아이 엠 샘> 틀린 건 샘이 아니라 우리였어 (2002/11/07)

<밀애>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2002/11/06)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순간의 키스, 영원한 사랑 (2002/11/06)

<포제션> 옛시인의 사랑을 추적하는 학자커플 리포트 (2002/10/27)

<비밀> 사랑은 영원히 계속 이어진다 (2002/10/14)

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