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 CIN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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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

박경미 | 2004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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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한때는 회사의 영웅으로 떠받들여지던 과학자 하야사키는 계속되는 실패와 슬럼프로 회사에서 해고될 위험에 빠져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야사키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이 계속되고, 죽음의 전조로 여겨지는 ‘도플갱어’가 하야사키 앞에 등장한다. 자신이 감추어왔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분출하고 난폭하며 비열한 짓도 서슴치 않는 도플갱어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하야시는 두려움과 동경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결국 그는 연구를 성공시키도록 도와준다는 도플갱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선과 안으로 구분지어져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던 하야사키와 도플갱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두 자아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기존에 도플갱어를 다루던 영화들이, 본체를 선으로 도플갱어를 악으로 이분화해서 대비시키는 것과는 다르게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이 둘은 대등한 자아로 설정한다. 선과 악이 순환하면서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은 한 사람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 둘은 한 세계에 속해있다. 결국 하야사키는 선하지 않고, 도플갱어는 악하지 않다. 이 둘은 다 도플갱어이거나 혹은 둘 다 자기자신이다. 하야사키는 도플갱어와의 기묘한 공존으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자아의 이면을 발견해 가고, 이것은 서로 공존하고 또한 갈등하면서 자아의 분열로 이어진다. 동시에, 자아가 차지하고 있는 세계도 분열을 시작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에서 갈등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합성화면을,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교차편집을, 그리고 두 사람의 인간이 두 개의 세계에 공존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분할화면을 사용하여 인간 내면의 자아 분열, 갈등 그리고 공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야사키가 도플갱어를 죽임으로써 이전의 하아샤키의 세계도 동시에 파괴되고, 이제 새로운 세계를 얻게 된 하야사키의 선택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