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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영화 #2 - 베트남 영화감독들을 만나다 :::


강병융 | 2001년 10월 18일
조회 8839


깜짝 스무고개! 다음은 어떤 나라를 설명하는 것일까요?

이 나라 국민들은 여가 시간에 카드놀이, 장기, 당구 등을 즐깁니다.(☜ 우리나라와 상당히 비슷하군요!) 이곳에서는 아내와 아이를 한대의 오토바이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군요.(☜ 우리나라는 아닌 것 같죠?) 젊은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댄싱홀 또는 최근 급속히 번진 가라오케에 가서 춤과 노래를 즐긴다는군요.(☜ 우리나라가 맞나요?) TV시청을 아주 즐기는 편이다. 특히 장동건이 인기가 많습니다.(☜ 아, 우리나가 맞군요! 요즘 <친구>로 장동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 TV도 무쟈게 보고! 그죠?)

그럼, 정답은? 예, 베트남입니다.

그렇다. 여러 가지로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약간 후진성을 띤 모양새만을 제외하고는.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그들과 우리가 비슷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드라마들이 그네들의 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어떤가? 최근 한국에서 흥행 실패를 맛 본 <천사몽>이 베트남 영화계에서 흥행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우린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부에도 언급했던 트란 안 홍의 영화 두편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영화는 우리에게 아주 아주 낯설다. 이제 그 낯선 영화들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하자! 한편으로 신기하지만, 한편으로 지루한 만남임을 전제하면서.

1. 베트남 대표 거장, 르 후푸옥

각 나라를 대표할 만한 감독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임권택 감독 정도면 대표 감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베트남의 대표감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에겐 후푸옥이라는 감독이 있다. 루 단이라고 짧게 불리기도 한다. 그는 단연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화감독으로 통한다. 1928년에 태어난 그는 아주 독특한 이력의 영화인이다. 학생 운동의 선봉장으로 활동하다가 프랑스 유학을 택하고 법률가로서 일을 하다가 영화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조감독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베트남으로 돌아와 변호사를 하게 된다. 변호사 활동 중 <티엔 알람벨>이라는 데뷔작을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다. 사이공이 함락되지 전까지 그는 12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어려운 베트남 영화 현실을 감안 직접 제작비를 조달했고, 그 어려운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스크린 위에 펼쳤다. <우리집>이라는 작품은 1974년에 칸느에 소개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으며, 베트공이 베트남을 점령한 이후에도 좋은 영화들을 계속적으로 연출함으로서 베트남 최고 감독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 유학파 감독, 호 쾅민

르 후푸옥은 유학을 다녀오긴 했지만,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한 유학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국내파 감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의 유학파의 대표 감독은 호 쾅민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업을 하던 중, 프랑스 영화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영화 수업을 받은뒤, 다큐멘터리 수법의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가 찍은 최초의 영화도 <20구역>이라는 비디오다큐멘터리였다. 그는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의 역사의식과 전통, 문화를 다큐 수법으로 표현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백지>, <업> 등의 영화도 그의 그런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이다. 르 후푸옥가 철저히 자국 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반면 호 쾅민은 좀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변국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아시아의 역사와 전통에 관심을 둔 감독이다.

3. 여류감독, 구엔 비엣린

여류감독이라는 말처럼 어처구니없는 말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남류감독이라는 말은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베트남의 여자 감독 한명을 만나기로 하자.

구엣 비엣린, 그녀는 어릴 적부터(16살때부터라고 한다.) 반미저항운동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1970년대 중반 해방 스튜디오 등의 단체에서 편집과 촬영, 시나리오, 편집을 배우고 익히다가 1970년대 말 구소련의 국립영화학교로 유학을 간다. 1986년 귀국하며, <새가 우짖는 평화로운 땅>으로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다. 도시에서 온 선생님이 시골에 가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그들의 전통문화를 배우며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1987년에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인 <의장이 필요한 법정>은 항미전쟁에 참여한 실존 인물이 여배우로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어릴 적부터 반미의식이 강했던 감독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만의 섬세함을 이용한 연출력을 보인다. 또한 아름다운 풍속들을 잘 표현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베트남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받고 이제 세계 영화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다.

당 낫민의 <강가의 소녀>
한나라의 수많은 감독들 중에 단 세 명을 소개한 뒤, 그 나라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개를 통해 미지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 내지는 작은 관심을 갖게 한다는데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베트남 영화를 훑어보면서 필자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그들에게는 우리에게는 없는 다큐멘터리 관습이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그들의 영화 정신 바탕에는 민족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들이 지닌 두 가지 모두 우리 영화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베트남 영화가 아직까지는 세계적이진 않지만 나름의 영화미학을 유지하며 명맥을 이어온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 영화 시장은 말 그대로 활황이다. 이 좋은 여건을 이어가지 위해 우리에게도 진지하게 뒤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함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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