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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영화 #1 - 시대와 정책 :::


강병융 | 2001년 10월 18일
조회 8606


"When you were here before, couldn't look you in the eye.
You're just like an angel, your skin makes me cry."


라는 가사를 지닌 노래가 있다. 라디오 헤드의 Creep이라는 곡이다. 음산한 분위기와 독특한 보컬. 전형적인 브릿락 계열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곡이다. 지금의 라디오 헤드의 곡과는 천양지차를 보인다. 하지만 라디오 헤드의 팬이든 아니든 이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노래가 실린 <씨클로 Cyclo>라는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화려한 색대비에도 불구하고, 습한 기운과 답답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지는 영화, 양조위의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이다. 트란 안 흥(Tran Anh Hung)이 바로 <씨클로>의 연출가이다. <씨클로> 뿐만 아니라 <그린 파파야 향기 Mu Du Du Xanh>도 그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극장에 개봉한 영화는 베트남 영화는 이렇게 두 작품뿐이다. 베트남 쌀국수집이 도심 곳곳에 있는 것에 비하면, 베트남 영화는 참으로 천대받는 셈이다.

베트남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난한 나라, 장동건이 무지하게 인기있는 나라. 바로 그 나랑의 영화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1. 호치민 시대

호치민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가 그렇듯이, 베트남에서도 영화는 선전 도구(propaganda)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전통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김정일도 그렇지만 베트남의 호치민도 영화에 상당한 조회가 있었다. 20대 프랑스 유학 시절에는 찰리 채플린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1945년 항불전쟁 중에는 베트남에서는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전쟁 중 불었던 다큐멘터리 붐이 가신 195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극영화 제작이 시작되었다. 1953년에 베트남시네마라는 스튜디오가 만들어지고, 많은 영화학도들이 소련, 중국, 동독, 등의 선진 공산주의 국가로 영화를 배우러 떠났다. 1961년에는 베트남 영화학교가 개교함으로써 트란 부(Tran Vu), 박디 엡(Bach Diep) 등의 감독을 배출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홍콩의 영향을 받은 오락 영화와 베트남 자국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전쟁영화가 혼재한 상황이었다.

베트남전을 마치고,(물론 전쟁 중에 수많은 전쟁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고, 44명의 촬영기사가 정장에서 목숨을 거두기도 했다.) 해방이 되면서, 베트남 영화는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하노이에 영화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가 생기고, 80년대 중반까지 10여편의 극영화와 50여편의 다큐멘터리, 10여편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등 나름의 영화붐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들은 국가에서 제작 관리를 하고 있어서 흥행성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자재 보급에 난점을 보이기도 했다.

2. 도이모이 시대

도이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베트남식 개방 정책을 일컫는 말이다. 1980년대 후반기가 되면서 베트남도 부분적으로 시장 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다. 개방의 바람은 영화계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 국가의 간섭하에 제작되던 영화는 년간 5편 이내로 줄었고, 은행이나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펀딩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국가가 영화 제작을 했을 당시, 흥행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면, 도이모이 이후에는 흥행을 염두하고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반면, 1980년대 초반 이전에는 국책 영화나 홍보 영화, 이념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았던 것에 비해, 이후에는 조금은 자유로운 주제의 영화를 만들수 있었다. 하지만 개방화 물결에 힘입어 서구 영화들의 대량 수입으로 베트남 자국 영화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당시 홍콩 영화의 붐이 대단하여, 많은 홍콩 영화가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3. 개방화 시대

과도기 국면으로 1980년대가 끝났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구상의 공산 국가는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이에 발맞춰 베트남 영화도 또다시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1991년 12월 베트남 정부는 신영화정책을 공표했다. 자국영화 감세조치, 외국과 합작 영화 제작 허용, 각종 영화장비 수입허용 등이 신영화정책의 줄기였다. 그리고 현재까지 신영화정책 하에 베트남 영화는 제작되고 있다. 과연 21세기를 접어든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의문이다.






강병융
오넷콜맨, 살바도르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하, 장 비고, 키애누 리브스, 정성일, 쿠엔틴 타란티노, 무라카미 류, 이무영, 존 드 벨로, 김영하, 로이드 카우프만, 장정일, 디지 길레스피
- 상기 거명된 자들을 한꺼번에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마시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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