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출간소식 :::
라인지기 | 2000년 10월 31일
조회 3456
책이름: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지은이: 조선희(전 씨네21 편집장)
판형/페이지/가격: 신국판, 275페이지, 7,500원
펴낸이: 한겨레신문사 출판부(710-0568)
잡지 시장이라는 콜로세움 속의 검투사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몇 년간 영화산업의 부흥이라는 순풍에 기대어, 그리고 문제작의 행렬에 힘입어 영화 저널리즘도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한가운데 잡지 <씨네21>이 있다. 그리고 이 잡지를 창간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영상주간지로 이끌어낸 전 편집장 조선희 씨가 있다. 국내 최초의 영화전문 주간지로 탄생해 97년 이후 주간지 판매율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을 만큼 <씨네21>은 이제 영화계와 관객을 잇는 가장 중요한 통로로 자리잡았다. 그 5년 간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희 씨의 이 책은 그래서 95년 이후 한국사회에 일기 시작한 영화붐의 실체를 증언하는 기록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영화잡지 시장을 '정글'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정글을 헤쳐나가려면 때론 하이에나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1년에도 수십 개의 잡지들이 명멸하는 주간지 시장에서, 그것도 고급 영화잡지라는 검증되지 않은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그의 말대로 풍랑을 헤쳐가는 쪽배의 선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특유의 승부욕과 추진력으로 쪽배를 무사히 항구에 안착시켰다. 결국 고급 영화비평정보지를 표방했으면서도, 그것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는 커다란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필자가 <씨네21> 편집장을 맡게된 건 사실 '자발적'이 아니었다. 그가 속해 있던 조직의 명령에 복종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인생에서 어떤 일도 안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는 게 낫다는 걸 체득했다. 계획된 인생이란 재미없는 것이며 인생에서 어떤 도전이 오면 기쁘게 응전하면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편집장이 영화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이긴 하지만 대신 자신이 궁금해하는 걸 기획하면 대중의 요구와 맞아떨어지곤 했다는 뻔뻔함(?)처럼 말이다.
영화시대에 짚고 넘어가야 할 두세 가지 것들
어쩌면 한국영화의 전성기와 때를 같이 한 덕분에 잡지의 성공도 가능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 영화붐에 대해 늘 의심과 의혹을 품어왔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영화붐에 편승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영화들이 대중적인 센세이션의 대상이 됐을 때, 두 번째는 문화적 편식성으로 인문학은 위기 상태로 내몰면서 온통 영화로만 몰려가는 현상을 보면서다. 그런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가져온 주범이 영화붐이라기 보다는 이 도도한 '실용주의 시대'라는 자문자답을 하기도 한다.
영화붐이 일어날수록 창작과 비평 사이의 논쟁 또한 더욱 치열해지게 마련이다. 한 영화는 백 명의 관객과 만나면 백 개의 다른 소리를 낸다. 비평이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현들 가운데 각기 다른 현을 건드는 것이므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 비평의 딜레마는, 좋고 나쁘고의 분명한 평가, 자극적이고 재치있는 표현 따위를 무기로 삼기 때문에 영화저널리즘은 절대 '별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론을 펴기도 한다. 93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화엄경> 비평기사를 둘러싸고 필자와 감독 사이에 벌어졌던 일화는 유명하다.
최근의 영화비평은 권력은 많고 권위는 없다고들 한다. 영화기자들은 기자들대로, 평론가는 평론가대로 그야말로 존재론적 위기라는 것이다. 일간지 영화담당 기자들은 '전문 기자'도 있지만 대개는 막대한 대중적 권력이 초심자 기자들의 칼 끝에 실려 있다. 또한 영화평론가들의 경우 이론가는 적고 할 일은 많은 국내 영화계에서 아직 공부가 짧은 젊은 평론가들이 미처 사춘기티도 벗기 전에 명망가가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만일 공인이자 권력자로서 영화평론가에게 어떤 자격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단평모음이 아닌, 한 권의 이론서일 것이라는 필자의 얘기는 한번 되새겨볼만 하다.
슈퍼우먼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진솔한 고민도 귀기울일 만하다. 흔히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의 에세이는 일반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이나 이력 때문에 그저 호기심어린 남의 얘기로 읽히기 쉽다. 타고난 자질이나 삶의 조건, 아니면 현재의 사회적 위치 등이 일반 독자들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반 사회 여건이 조금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한 조직의 리더로서 제 역할을 하고, 또한 그만한 평가를 받기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특히 가정과 일을 겸하는 기혼여성이라면 이것이 훨씬 복잡한 문제가 되고 만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이른바 '일하는 여성'으로 남고 싶은 이들에겐 자신들의 '역할 모델'이 되어줄만한 사람이 아쉽기만 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미래의 자기 모습을 그려볼 하나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같은 신문사 동료이자 3살 연하인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회사에서 '일중독자'로 불렸던 그는 '일하는 여자'와 관련해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집안과 직장 두 가지를 모두 잘 할 수 있는 슈퍼우먼은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슈퍼우먼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슈퍼우먼이길 포기해야 하며, 주위에서 슈퍼우먼을 기대하도록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 '성공한 전문직 여성' 또는 '프로의 여자'들이 진짜 폼나는 인생을 살려면 한국사회도, 한국의 남자들도, 여성 자신들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희는 작가다. 십여 년 전 그가 발표한 소설 한 편을 읽은 이래, 그가 맹렬 문학담당 기자로 활약할 때나 영화판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씨네21> 편집장으로 있을 때도, 나는 그를 늘 '작가 조선희'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 언론계에서 아무나 쟁취할 수 없는 그 빛나는 이력을 팽개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라는 해병대식 계율은 모든 창조의 열망과 재능을 타고난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저주의 신탁인 것이다.
내게 한가지 걱정은 있다. 작가의 삶이란 저 세속의 밀림에 대한 공포와 열등감을 이기지 못한 자가 거주하는 동굴의 어둠 같은 것인데, 이곳에 거처하기엔 그가 바깥에서 너무 잘 나가는 야수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안광을 빛내던 하이에나의 시절에도 얼마나 상처투성이의 물러터진 내면을 싸안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성공의 잔을 마시던 순간에도 그는 실패와 입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어둡고 긴 실패의 길을 떠나려는 그를 축복하고 싶다. 벌써부터 잘 곰삭은 상처의 향내가 날 취하게 한다.
- 이창동 (영화감독)
이른바 성공했다고 하는 여성에게서 재능과 성실성 이외의 성공 전략을 엿볼 때가 있다. 여성의 성공은 아직도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에 의해 승인받음을 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여성은 성적 매력을 전략으로 활용하고, 또 어떤 여성은 다소곳하고 순박한 전통적인 여성상을 전략으로 차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희는 다르다. 그의 성공 전략은 잘난 척 하기, 욕심 부리기, 수다스럽기, 뻔뻔스럽기 등이다. 우리는 고교시절부터 친구인데 나는 이따금 그를, '굳센 금순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목표를 향해 씩씩하고, 쟁취한 것에 대해 내숭없이 자랑하는 그의 태도를 나는 좋아한다. 더불어 조선희 스타일이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의 모델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 김형경 (소설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난 '전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절제된 강단, 드라이한 어조, 차분한 기개…. 긴장 팽팽한 전투를 일상으로 겪어내며 배양된 신경망의 인장강도가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판이해진 백전노장 야전사령관이나 풍길 듯한 勢.…. 그녀의 이 글을 통해 난 비로소 그 勢의 정체와 뿌리를 읽어냈다. 이건 90년대 문화 최전방을 말달리다 자연인으로 복귀한 한 섬세한 여장수의 난중일기다. 난중일기….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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