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극 [정약용 PROJECT]

제2채널

토리극 [정약용 PROJECT] :::

성재원 | 2002년 03월 10일
조회 4205

옛 건물의 윤곽만을 그려넣은 다소 힘이 떨어지는 무대의 공간이 하얀 바지와 저고리들로 눈부시다. 광대뼈를 강조하고 눈썹과 눈매의 곡선미가 도드라진 마치 안동 하회탈을 연상케 하는 얼굴에서 차차 발을 감싸 안은 하얀 버선 위의 짚신으로 시선이 옮겨갈때면 꽤 싸하게 옛 분위기에 취하기 시작한다.

연극의 시작과 끝맺음은 정약용 사랑 프로젝트의 대상인 민초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연극초반, 소탈하고 격의 없는 민초들의 구수한 입담과 악의 없는 희롱에 관객들은 오그라든 맘을 열어 웃는 사이 연극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빨려 들어간다. 두웅두둥, 딱, 따닥 귀를 파고드는 북소리를 반주 삼아 고저장단 펼쳐내는 배우들의 흐드러지는 말소리에 입맛을 다시며 말이다.

연극 [정약용 PROJECT]의 강점은 바로 이 분장과 아울러 꺾이고, 흔들리며 울려 퍼지는 배우들의 구성진 육성과 그것의 리듬감을 보조해주는 북소리에 있다. 전통어린 민족적 정서를 수용하면서도 조금씩 현대적인 감각으로 디자인된 관료, 임금과 중전, 악의 상징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어둡고 음침한 의상이 다채롭다. 음절 음절마다 끝이 살짝 올려지다가 문장의 말미에 내려가서는 억양이 내려가는데 보통억양의 말과는 달리 지루하지가 않다. 또한 배우들의 다양한 음색에 따라 그 느낌이 더욱 변화무쌍하며, 리듬을 살려주는 북소리와 고수의 추임새까지 곁들어지면 이야말로 푸짐한 잔칫상이 아닌가? 단, 조금 트집을 잡자면 북과 궁합이 맞는 징이나 꽹과리 대신 심벌즈가 가끔씩 요동을 치는 것과 발성의 문제로 목이 쉰 배우 몇몇이 좀 거슬린다.

정신없이 이 새로운 맛을 따라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정약용의 삶과 함께하게 되고 극의 종반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정약용이 정치적인 음모에 휘말려 실각하는 대목은 조금은 지루하고 감정이 쉽게 이입되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의 삶이 가장 비극적이고 관객은 감정의 자극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지만, 그 힘이 예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정약용 그 자신에 있다.

사리사욕에 눈먼 노론의 탐관오리 들과는 구별되어 백성을 위하는 삶을 살았기에 당대에는 칭송 받아 마땅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정약용이 갖는 가치는 미미할 뿐이다. 불평등한 봉건사회의 존속을 전제로 한 그의 삶과 사상은 더 이상 시민세력이 준동하는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짊어졌던 시대적 사명을 이제는 그가 불쌍히 여겼던 그 민초들이 떠맡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설마 관객들이 정쟁을 일삼는 국회의원 들을 보며 정약용을 떠올리겠는가?

이 시대에 왜 정약용을 이야기하는가? 에 대한 불만이 생기지만 그냥 먼저 살았던 한 사람의 삶을 관조한다는 의미에서 그냥 연극을 보고자 한다면 그럭저럭 볼만하다. 연극의 막바지에 이르러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정약용의 모습은 한 꺼풀을 벗어내어 한껏 자유롭고 풍요로운 내면이 엿보이기에 흡족한 맘이 든다. 연기의 내공이 튼실하다는 생각이다. SBS 사극 “여인천하”의 대사 패러디 “찍어내어야, 도려내어야”, 동계 올림픽의 쇼트트랙 선수의 율동 패러디등은 짬짬이 웃음을 준다.

의상, 분장, 창극과 같은 대사와 음향효과 등의 형식미는 무척 독특하고 즐길 만 하지만, 그 안에 담는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연극이었다. 차라리 이름 석자 쓸 줄 모르는 무지렁이 민초들의 희로애락을 이 형식에 담았더라면..

[정약용 PROJECT]

기획: 극단 아리랑
원작: 방은미
연출: 방은미, 김만중
안무: 김옥희
출연: 체태완, 서후석, 이경주, 이영주, 송태성, 이한일, 김동순, 정종복, 김신용, 한동규 외 극단 아리랑 단원들

공연안내

일시: 2002년 2월 20일(수) - 2002년 4월 28일(일)
장소: 소극장 아리랑
요금: 일반, 대학생 15,000원 / 초,중,고생 8,000원
문의: 02-741-5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