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재길 장편소설 [모닥불을 밟아라] :::
윤상열 | 2000년 10월 10일
조회 1222
원재길 장편소설 [모닥불을 밟아라]
- 1997년 문학동네.
`마술사는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일로 살아간다. 하지만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난당하는 일이 없으며, 기만당한 자들에게 고통이나 좌절감이 아니라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아가서 한층 절묘하면서 완벽한 속임수를 쓸수록 더욱 열렬한 찬사를 받는다. 축복 받은 족속이 아닐 수 없다.
종교와 정치와 연예와 문학과 출판 등 온갖 분야에서 대중을 기만하여 자기 실속을 챙기는 경주가 한창인 이 시대에, 마술에 통달하게 되면 어지간한 사기극엔 쉽게 넘어가지 않는 지혜와 안목을 자동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부수입이 따른다.`
- 작가의 말 中에서
 | | 유쾌한 롤러코스터 [모닥불을 밟아라] |
원재길氏의 장편소설 "모닥불을 밟아라"는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성스러운 피를 연상시키는 환상성과 츠카모토 신야의 영화들을 조합해 놓은 듯한 현실과 환상의 대립으로 파열되는 자아의 무아까지 포함시키고 있는 아주 유쾌한 롤러코스터식 소설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주술사의 치기 어린 쇼맨쉽을 가장하는 작가로 보기에는 우리의 성급함이 너무나도 안이함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와 知己관계에 있는 성석제氏의 소설집 "홀림"의 경우를 보아도 알겠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기형도를 축으로 하는 문학습작시절을 특이하게 공표하지 않아도 무방할 만큼 자기 자신의 고유한 작가적 지형도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홀림" 역시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공간적 혹은 개인적 상상과 은유들의 결합체들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되는 그 상황설정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노름하는 인간`, `술 마시는 인간`, `소설 쓰는 인간`으로 이어지는 이 소설집의 서두 작들은 원재길의 "모닥불을 밟아라"가 지니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곱게도 병렬시켜 놓은 그 모양새를 엄숙하고도 한편으로는 지리멸렬하게 되새김질하는 방법에 대한 코멘트임을 주지 시킬 수 있어주리라 믿는다. 이번 `視소설을 찾아서`의 개관 역시 그러한 의도 하에서 이루어 졌음을 숨기지 않고 밝히려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꿈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1. 프롤로그
`어느 것이 알맹이이고 어느 것이 껍데기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 소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적인 회고에서 이야기의 출발점을 시작한다. 환영이 된 할머니와의 기억은 그 자신이 머물고 있는 그곳이 환영인지 아닌지 조차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혼란스럽지만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안도감을 준다.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꿈과 현실 속의 불안정하고 일탈적인 그의 삶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머지않아 그에게 닥칠 운명의 소용돌이는 알맹이와 껍데기의 이분법으로는 쉽게 보아 넘겨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이곳저곳에서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2. 에피소드 하나
주인공 `나`에 관한 도드라진 성장의 기록으로 펼쳐지는 이 첫 번째 시퀸스는 그의 주변의 인물들과의 변주로 들려지는 유년기의 결코 평범하지 않는 통과제의로부터 시작된다. 강가에서 우연히 기억을 잃는 시간으로부터 그의 현재는 환상이 되고 그의 과거는 기다려지지 않는 현실이 되어 버린다. 우선 그에게 있어 `홀렐루야파`가 갖는 그 헤게모니는 집단적 최면으로부터 얻어지는 군중의 마비로부터 획득될 수 있는 온갖 도구들의 경연장이라 여겨질 만하다. 지도자라 불리 우는 교주가 나타나서 백여 년 전에 코카서스 지방에서 유행했다는 포도를 갈아 만든 음료수에 청산가리를 타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마시게 하는 마술을 펼쳐 보인다는 황당한 설정이나 이승의 삶을 버리고 단지 마술에 불과한 엉터리 교주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사람들이나 그 모두가 납득되기에는 마술의 속임수 만큼이나 억지라는 걸 눈치채기에도 바쁘다. 또한 홀렐루야파에 대한 설명 또한 너무나도 단순 명료하고 기가 막힐 뿐이다.
"홀, 구멍. 일종의 혼음 마술 집단이지. 위아래도 없고 정해진 배우자가 없는 자들이야. 모두가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나 붙잡고 흘레를 붙어도 된다는 규약이 있는 집단이지." 주인공 자신조차 혼동스러워 하는 이 대목은 뒤에 천국가는 노잣돈을 걷는 교주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세태와 비슷한 양태임을 알아차리면서 그러한 부풀려진 설정에 아연실색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유머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영화에서 이런 부분은 매우 세련되게 다루어지던지 아니면 배우들의 절제된 공허함이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마력이 숨어 있어야 문어체 구문의 환상성을 영상과 대사로 멋지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홀렐루야라는 거대 혼음 집단의 엉뚱함 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던 '세계 초현실주의자 대회'라는 신비로움은 문자를 읽는 다는 상상력에 대한 보답으로 여겨질 만큼 공상과 망상의 보고(寶庫)와도 같았다. 그러한 가설로서의 현실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만화 같은 주문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에게 원재길의 이러한 소설적 장치들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 호응을 얻었으리라 생각되는 지점이다.
3. 에피소드 둘
붉은 장갑이 갖는 두 개의 의미는 마술사와 딱따구리다. 마술사는 전지적인 입장에서 그려지는 어떤 특별한 존재이고, 딱따구리는 객관적인 시점에서 주인공인 '나'의 성장과 함께 그려지는 장치적 인물이다. 전지적인 입장에서 마술사는 주인공의 내면의 세계와 성장의 단계, 그리고 주술적인 환상의 세계를 지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흥행사라는 통칭에서부터 느껴지는 대중성과는 아주 이중적인 의미로 '붉은 장갑, 기린을 연주하다'에서 이어지는 주인공 `나`와 `마술사`의 동행에서부터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다.
마술사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가 주인공에게 있어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술이지 주술적인 의미의 교리가 아니라는 분명한 선을 주인공은 그와 동행하는 내내 우리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페이지 154 - 페이지 155 부분에 담겨 있는 흥행사의 대사를 음미해 보면 우리는 작가의 그러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흥행사에게 소원을 들어 줄 수 있는 3가지 선물을 부탁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행태 - 피를 쏟고 죽어 있는 미물들을 청소하는 데 쓰고, 도망갈 보트를 마련하는 데 사용 - 등등은 결국 가볍게 얻어지는 것은 다시 아무런 의미 없이 사용되어 지는 우리의 현물 경제를 드려다 보는 자각까지일게 만든다. 결국은 흥행사와 제1회 세계 초현실주의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목적대로 그곳에 도착하지만 주인공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흥행사의 종잡을 수 없는 행적과 행실대로 조금은 불유쾌한 공명으로 끝나는 마술에 대한 은유와도 같이 살아감을 느끼게 된다.
4. 에피소드 셋
이 소설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회화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대목은 전위 예술가와 권투선수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을 갖고 있는 큰 집 형의 등장 부분이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도시에서 큰 집 형과 함께 유학생활을 보내는 주인공 '나'에게 큰 집 형의 기괴하고 일탈스러우며 엽기적인 - 정말로 엽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 행동은 읽는 이로 하여금 붉은 장갑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병치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자연스럽게 훼손하고, 여러 가지 작업에 몰두하는 것 - 가령, 여자친구와의 성교를 전위행위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레슬링의 가까운 몸짓들을 시도하는 경우 - 등은 원재길의 단편집 '벽에서 빠져나온 여자'에 수록되어 있는 '삼촌의 좌절과 영광'이란 단편에 나온 삼촌의 캐릭터와 매우 흡사하게 닮아 있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그 작품에서 삼촌이 가르쳐 주는 삶의 7가지 방법들 (思·時·照·道·絶·熱·戀)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나'가 겪는 붉은 장갑과 큰 집 형과의 만남의 시류속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모티브들에게 부여되는 동기화의 주된 축약된 지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가져보게 만든다.
5. 에필로그
딱따구리의 표절 사기극과 거기에 비유된 우리 문학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모닥불을 밟는 뜨거운 고초의 자기 성찰을 요구하는 것 같아 몹시도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흥행사의 놀라운 능력도, 큰 집 형의 부질없는 예술지상주의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 아닐까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세상의 잡다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대한 확실한 믿음만 있다면 그런 환멸의 현재에 부딪치면서도 어렵지 않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싶다. 어둠이 있는 것은 새벽이 있기 때문이라는 유명한 경구처럼 세상의 모든 일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분별하는 판단력은 마술의 속임수를 구별하는 것과 표절된 문화의 자폐를 깨뜨리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 가능할 것이란 주문(呪文)을 나에게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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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열
아..아름다워라....
여..여자가 그렇게 보일 때...
사..사내는 그 여자를 본다...
아..아직도 모르는가 그대는...
여..여태 깨닫지 못했는가...
사..사랑은 당신에게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삶이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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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