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화제의 영화 #2

감독: 유영식
출연: 김상중, 정준호, 장동건, 이범수

무정부주의로 풀이되는 아나키즘은 민족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노선을 지향한다. 항상 조직은 이념을 좀먹는 법. 그래서 아나키스트는 지나친 조직주의를 회피한다.

영화 <아나키스트>(4/29 개봉)는 1920년대 상해를 배경으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우는 열혈남아들을 느와르의 색깔을 입혀 만들었다.

경신(김인권) 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상구는 상하이 공개 처형장에서 단원들을 처음 만나 소년 단원이 된다. 허무주의 인텔리 세르게이(장동건), 낭만적 휴머니스트 이근(정준호), 냉철한 사상가 한명곤(김상중), 과격한 행동주의자 돌석(이범수)은 늘 세련되고 단정한 차림새로 거사를 진행한다.

쓸쓸한 상해 뒷골목을 이들의 인생살이처럼 표현한 감독은 화면의 멋을 아는 듯하다. 장르적 요소들이 미약하고 인물들의 심리가 지나치게 상구의 내레이션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2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공감이 가도록 그렸다. <태백산맥> 이후 마르크스의 이름이 이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처음있는 일이다.

사랑과 배신, 안타까운 죽음과 노출의 위험. 1919년에서 1925년 사이에 300여건의 테러를 감행, 당시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는 폭력과 테러만이 효과적인 독립투쟁노선이라는 신념으로 살았던 의열단은 해방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아나키스트>는 그들의 이념을 네명의 단원들의 인생살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고 정치적인 색깔을 갖고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나키스트>는 장르와 소재가 잘 배합된 영화다. 세르게이를 사랑하는 가네꼬가 '우울한 일요일'이라는 샹송을 부르는 부분은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다.

마치 화두처럼 던져지는 함축적인 대사가 일품인 <아나키스트>는 지난온 역사의 한 토막을 재현해 낸다. 여기 혁명가로 삶을 바쳤던 젊은이들이 있다고.

혁명가란 저 강 멀리 아름다운 땅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서풍과 같다고.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