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우의 영화 바로보기 #10

실상 '달라이 라마'의 방한계획에 맞추어져 개봉을 기대했던 이 영화가 마틴 스콜세지의 최근작이라 기대했던 내 기대는 97년도 제작해서 뒤늦게 영화사가 수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지않이 실망했다. 시사회 전에 수입사 관계자가 나와 인권이 어쩌고 저쩌고 '전국민 쿤둔보기 운동'을 펼치니 어쩌고 하며 떠드는 말들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달라이 라마 방한 불허 소식이 오히려 고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필자가 그의 존재나 정치적, 종교적 위상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입장으로서는 이 얄팍한 상술을 뒤집어쓴 수입사 태도에 적지않이 실망한 것은 사실이니까.

아무튼, 최근작 <비상근무>가 국내에서 참패를 한 이후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을 다시 접해보는 터라 유명작가들에 대한 또다른 보편적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 감독은 어느정도 먹고 들어가니까..." 라는 통념처럼 그냥 스콜세지니까 라는 일종의 선입견은 내가 이 영화에 대한 기대 또한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필자는 어떠한 영화든지 영화적 미적, 구성적 완성도나 훌륭함을 떠나서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크나큰 관심을 보이는 성향이라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실상 이제서야 우리나라에서 대중아저씨가 노벨상을 받은 직후고 달라이 라마 방한계획이 그와 겹쳐지면서 부각되어 왔지만 실상 '쿤둔'에 대한 의식은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티벳자체의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꾸준한 독립 노력의 언론을 통한 소식과 98년부터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가 공식적으로 티벳 외교사절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라마의 전세계 순방과 강의에 더불어 그와 그의 나라에 대한 관심은 날이갈수록 커져갔다. 그의 완벽히 도덕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샤머니즘이 결합한 종교적 위상과 비폭력 투쟁과 소수민족 인권보호의 수호자라는 측면에서의 정치적 위상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위치는 애초부터 전세계에 파장을 낳을 수밖에 없는 태고적 한계이자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에 유행하는 흐름을 누구보다도 놓치지 않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미국, 그중에서도 문화의 첨병인 영화계에서 그의 이러한 애매모호한 존재를 가만 놔둘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잘 다루어야 한다. 그들 미국의 입장을 옹호하면서도 달라이 라마 개인의 업적을 적절히 감동적인 '드라마'로서 승화시킬수 있는 그런 영화로서.

스콜세지가 그 역을 맡았다.(미국인들이 스콜세지를 선택했다는 점도 그리고 이 영화를 지지했다는 점 역시 수상하다.) 실상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스콜세지 특유의 입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그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유구하게 보여준 사회비판 정신(그것도 좀 거창하지만)이라던지 언제나 모순된 사회를 찾아내 비꼴 수 있는 시선(그것만큼은 참 탁월하다. 좀 어거지인 부분도 있지만) 등은 이 쿤둔에서 '달라이 라마를 다룬다'라는 커다란 대의명분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솔직히 '쿤둔'을 담아내기에는 영화감독이라는 입장과 위치에서는 거장이라 할지라도 적지 않은 부담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영화속 내내 보여진다. 어느 영화나 그렇듯이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린다는 것이 그것이 사실과 필연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일대기를 보는 시각 자체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반영이 틀리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스콜세지는 일반적, 통념적 현 세계에 흐르고 있는 기류에 편승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뭐 그것이 개인적인 신념이든 아니든 상관 없겠지만 <쿤둔>이라는 위상에 대해서 가장 개인적인 소소한 드라마로부터 시작해 결말에 가서 역시 드라마로서 끝낸다는 이 설정은 그가 쿤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영화 속에서 보다 명확히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상 이 영화를 평가해 보건대 보는 사람들마다 틀리겠지만 이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로 해석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스콜세지는 이 영화의 구성에서의 방만함과 영화속의 메세지의 중용을 지키느라 정치적, 종교적인 주안점을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라마의 어릴때부터 성년까지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우리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의적인 선입견에 힘을 실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그의 정치적, 종교적 업적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그린다고는 했지만 그것도 유소년시절의 이야기였을 뿐 성년이 된 달라이 라마 이후의 모습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정치적으로 빠질수 밖에 없다.(여러분들도 아시는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약자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이 얼마나 약삭빠른가!? 그들의 국가는 횡포하지만 국민들은 더할나위 없이 천사표 국민이다.) 중국이라는 국가는 철저히 티벳을 짓밟는 나라로서 비추어지고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이제 그 국가를 인도하는 수호자로서의 위상으로 바뀐다는 점이다.하지만 우리는 과연 달라이 라마를 다룬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마치 '중립성'을 띄운 채 우리에게 달라이 라마에 대한 지지를 간접적으로 호소하고 있지만 필자의 느낌은 그것이 굉장히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평범한 드라마 형식을 띄면서 '인간 달라이 라마의 굴욕적인 일대기'를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형식의 영화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의 정신적, 종교적 업적과 설파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관객들에게 있어 그의 현재 위상에 대한 측은함만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우리의 저 '공산당 반공영화'나 다를 바 없는 '일방적 영화'로서 전락하게 된다는 말이다. 영화속 내내 비폭력과 인생살이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내러티브가 나오긴 하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드라마는 그를 일개 영웅으로 추대하고 결국 종말에 가서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식의 결말은 지극히 할리우드 적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서 감동받은 분도 계실 것이고 달라이 라마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돌아오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점 한가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대전제 아래 영화는 인생의 반영이다라는 말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세계가 영화속 달라이 라마의 세계와 동일할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갖지 않아야 할 듯싶다. 물론 그것이 어느 쪽으로 기울든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이 영화는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질 수 있는 많은 소지를 다분히 남겨준다. 우리가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위상과 현란한 업적에 눈과 정신을 팔 만큼 성숙하지 못한 인격자가 아니라면 이 영화가 주는 우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메세지에 불타오를 필요는 없다. 다만 영화적으로 아쉬운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스콜세지의 태도이다. 필자의 아쉬움은 그것 뿐이다.

추신:

만약 스콜세지가 볼리비아 혁명가(쿠바에서는 이미 성공한 4성장군)인 체 게바라의 삶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면 어떠한 색깔의 영화가 나올까!? '공산주의의 그리스도'라고 불린 그의 위치는 달라이 라마와 비교했을때 과연 어떠한 사람일까?! 이 영화속에서 스콜세지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관객들은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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