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고 타이틀이 뜰 때까지, 카메라는 방안의 벽지를 가만히 훑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꽃무늬가 프린트 된 듯한 벽지를 살펴보면, 뭔가 반복되는 규칙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무늬들이 데칼코마니로 되어 있는 것이죠. 데칼코마니. 한 쪽에 그림물감을 바르고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가 폈을 때 나타나는 대칭적 그림입니다.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소품 사용의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가 전래동화 [장화홍련전]의 또 다른 쌍둥이(데칼코마니)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제목만큼이나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어린 시절 읽으며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장화홍련전]과는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갈등의 축이 ‘계모와 자녀’ 라는 점과 ‘장화, 홍련’이라는 타이틀만 뺀다면 말이죠.

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조용한 가족>의 산장처럼 외롭게 떨어진 공간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호러무비에서 폐쇄적이고 고립된 집은 너무 익숙한 클리셰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부터 현재 헐리웃물에 이르기까지 번번히 사용되는 장치니까요. 뭔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 고립된 공간에 우리외에 누군가 있다는 이물감. 여기서 오는 공포란 진정한 두려움이라기보다 날카로운 사운드와 불안한 음악, 그리고 빠르게 흔들리는 카메라 움직임등에 의한 말초신경의 자극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공포만을 원했다면 왜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을 보겠습니까. '그 이상의 무엇' 이 있을 것이라 믿고, 우린 그의 장화홍련을 기다린 거죠.

공포의 또 다른 원천 중엔 '공감'에 의한 것이 있습니다.
단순한 두려움의 차원을 떠나서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발견하는 순간, 공포는 시대적 맥락을 반영하는 사회적 텍스트로 변합니다. <장화, 홍련>은 그 시대적 맥락을 '가족'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족'이 주는 공포에 문제가 있습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 그는 문제의 원인제공자이지만 끝까지 아무런 피해도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수수방관할 뿐이죠. 부재한 아버지의 캐릭터는 원작에서도 그랬으며 기존의 '심청전' 이나 외국동화 '헨젤과 그레텔' 등에서도 보아온 캐릭터 입니다. 그대로 차용한 것 뿐이죠. 현대적인 의미를 덧씌운 흔적이 없습니다. 가부장제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한 캐릭터 하나를 놓친 셈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인 계모를 볼까요? 비정상적으로 신경질적인 계모에겐 그토록 아이들을 미워해야 할 납득할만한 동기가 없습니다. 예전의 [장화홍련전]에는 계모에게 분명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딸린 아들이 있었으니까요.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자신에게 계승되어야 할 부(富)의 상속을 위해 장화와 홍련은 없애야 할 존재였으니까요. 하지만 <장화, 홍련>의 계모에겐 이유가 없습니다. 이혼율 세계 3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에서 계모가 전처의 자식들을 이유없이 미워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런 류의 공포는 이야기가 만들어진 조선시대에나 공감대 형성이 가능했던 것이죠.

아니라 다를까, 영화는 반전으로 끝을 내며 이런 의구심을 막아버립니다. 때문에 반전은 잠시 영화의 이해를 돕지만, 그저 그 뿐입니다. 그 반전을 통해 영화를 재해석할 수 있다든지, 갑자기 흩어져있던 퍼즐조각이 완성된다든지 하는 효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역순으로 따져보면 빠진 조각들이 더 많죠.

차라리 영화는 처음부터 가족의 '해체' 같은 현대적 이상증후에 좀 더 초점을 맞춰야 했던 게 아닐까요.
알튀세르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는 '가족'이라고 했을 만큼 우리에게 가족이란 또 다른 사회병리현상으로 자리 잡았으니까요. 감독의 좀 더 사려깊은 고민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우린 보다 오싹하고 서늘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영토 확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인 [장화홍련전]의 데칼코마니가 되기엔 아직 많은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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