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갑자기 약속이 취소 되어서 한 두어 시간 정도 아무런 할 일이 없을 때, 혼자 그 시간을 어떻게 떼울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가까운 극장이나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 한편 보고 나왔던 경험.

<기묘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갑자기 퍼붓는 비 때문에 사람들은 역에 발이 묶여 버린다. 그들은 지루함을 쫓기 위해, 단지 시간을 떼우기 위해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그 때 마침 사람들 중에 이야기꾼이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네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은 각각 공포, 코미디, 환타지, 멜로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들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비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네 편의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는 어느덧 비는 그쳐 있다. 이제 그들은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영화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무엇인가? <기묘한 이야기>는 이런 물음들에 아주 소박하게 답을 한다. '그저 시간 떼우기'일 뿐이라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해외토픽 기사처럼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지만, 그것 뿐만 아니라 한번쯤 생각해 볼 거리들도 던져주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 실제, 역사, 사실, 진짜, 나. 지금까지 이런 것들은 불변하는 그 어떤 절대적인 것이었다. 현실은 현실이고 몽상은 몽상이다. 아무리 몽상을 해봤자 그것이 현실에 끼어들 리는 없다. 역사적인 사실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또 누구는 모든 것을 다 의심해봐도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네 편의 기묘한 이야기들은 이런 믿음들을 은근슬쩍 흔들어 놓는다. 극한 상황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상상한 일일까. 그 경계점은 애매모호하다. 현실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역사라는 것도 후대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끼어듦으로써 새롭게 재구성된 것일 뿐이다. 그것을 감독은 과거의 인물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영화는 뒤로 갈수록 현실과 가상이라는 화두를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체스와 현실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현실이 체스 같고 체스가 현실 같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아도 경험한 것과 똑같이 느껴진다. 정말로 미워서 헤어졌지만 알고 보니 그건 시뮬레이션이었다. 다시 그들은 만나지만 그것 역시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손을 꽉 잡는다. 그건 아마도 시뮬레이션의 힘일 것이다.

현실의 절대성을 의심하고 가상이 현실에 끼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영화 혹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과 같다. 영화는, 이야기는 순전히 몽상 속에서 나온 것들이지만, 결코 몽상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현실에 끼어듦으로써 새롭게 현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영화의 힘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영화에 관한 영화다. 혹은 현실에 맞선 몽상의 항변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은 '이야기의 내용이 기묘하다'는 것과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기묘한 것이다'라는 것으로 중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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