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이 엠 샘>을 보았다.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만으로도 어떤 영화인지 알 것 같아서, 또 기자시사회를 놓쳐서 안보고 있었는데, 비틀즈 음악 때문에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보게 되었다.

스타벅스의 무차별 PPL로 시작하는 영화는 내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감동을 순서대로, 영화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나열해보겠다.

1. 내적인 것 - 결정적 장면 베스트 3

3위는 샘(숀 펜)과 루시(다코타 패닝)가 놀이터에서 그네타는 장면이다. 즐거운 한때를 묘사한 이 장면은 앞으로 이어질 험난한 행로를 예고하듯 불안정하다.

2위는 리타(미셸 파이퍼)가 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루시를 잃고 방 안에서 종이학만 접고 있던 샘이 당신같은 사람은 내 아픔을 모른다고 하자 리타는 바람 피우는 남편과 자신을 멀리하는 아들 사이에서 괴로운 자신의 속내를 고백한다. 눈물샘이 축축히 젖어들게 했던 장면이다.

1위는 루시를 입양한 엄마(로라 던)가 샘에게 찾아와 루시를 안기는 장면이다. 자신은 루시를 위해 방을 만들어주고 꾸며주었지만, 밤이 되면 샘을 찾아가는 루시를 위해서는 차라리 샘에게 보내는 게 좋겠다며 사과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감동은 샘과 루시의 관계보다는 샘을 통해 변화하는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더 많이 표출된다. 유능한 워커홀릭 변호사 리타는 샘을 통해 가정을 정리하고,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는 샘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된다.

2. 외적인 것 - 카메라, 미국과 비틀즈

이 영화가 나를 외적인 면에서 감동시킨 이유는 우선 현란한 카메라 워크에 있다. 클로즈업과 줌 인, 아웃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던 카메라는 버스를 타려는 샘을 따라가는 장면에서는 아예 핸드헬드로 뛰어다니면서 거울에 비친 샘의 모습과 실제 샘의 모습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곳곳에서 핸드헬드와 빠른 편집이 능숙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법정 장면에서 샘이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의 대사를 말하는 부분의 편집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느리고 어눌한 샘의 말 한 마디 마다 또박또박 화면을 분절해서 편집의 리듬감을 살려내고 있다.

마지막 법정 장면의 과감한 생략, 리타 집과 샘의 집에 대한 훌륳한 프로덕션 디자인 - 이 부분에서는 각각 다른 필터로 촬영하여 대립적인 분위기를 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때마다 상황을 설명해주는 비틀즈의 음악이다. 에디 베더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이 비틀즈의 노래를 편곡해 들려주고 있는데, 지금까지 제작되었던 수많은 비틀즈 영화들 중에서 가장 음악과 화면이 잘 어울리는 영화 중 한 편일 것이다.

아마 세상의 사람들은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과 비틀즈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비틀즈는 20세기의 아이콘이라고 할 만큼 비호감 없이 추앙받고 있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을 숭배하며, 비틀즈를 잘 모르는 사람도 역시 비틀즈의 음악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은 가지고 있다. 이것 역시 <아이 엠 샘>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모든 일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스타벅스나 피자 헛 매니저는 건강한 미국인의 상징처럼 그려지고, 정신지체아인 샘을 직접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은 영화 속에 아무도 없다. <오아시스>에서 문소리를 내쫓은 식당과 비교해보라. 주문한 음식이 있는 지 알아보겠다고 말하는 웨이트리스가 있는 <아이 엠 샘>의 미국이 훨씬 인간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포레스트 검프>처럼 정신지체는 그저 또다른 환경일 뿐이다.

미국은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나라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다들 착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지구상에 이러한 나라로는 북한 정도가 있을 법하다. 강압적인 지도자 아래의 백성들은 순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엊그제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키고, 낼모레 이라크를 때려죽이겠다고 공언하는 그 미국 지도자만 아니라면 미국은 샘과 루시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일텐데. 솔직히 샘과 루시의 앞날이 좀 걱정되는 것은 공화당 부시행정부 탓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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