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도 아시겠지만, [폰]은 휴대 전화를 소재로 한 공포물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지원은 원조 교제를 다룬 기사를 쓴 뒤로 짜증나는 스토커에 시달리다가 전화 번호를 바꾸는데, 그 뒤로 기분나쁜 일련의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합니다. 전화에서는 계속 정체불명의 신음소리가 들리고, 친구 호정의 딸 영주는 우연히 그 전화를 받은 뒤로 계속 신들린 것처럼 행동하고요.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그 번호의 이전 주인들 중 한 명과 관련된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영화는 무척 부지런합니다. 일단 다루는 장르 요소들이 굉장히 많죠. 미치광이 스토커, 레저렉션 메리식 유령, 아파트 도시 괴담, 고전적인 유령 원한 풀기 이야기, [여고괴담]식 고교 공포물, [엑소시스트]식 어린아이 괴롭히기, 사라진 학생과 관련된 추리물, 에드가 앨런 포우식 시체 암장... 다들 그렇게까지 독창적인 것들은 아니지만 좋은 결합은 전적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폰]의 시도는 기본 개념만 따진다면 상당히 생산적인 편이에요. 휴대 전화의 활용처럼 새로운 요소들도 충분하고요.

문제는 그 결과가 개념만큼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안병기의 스타일에 있어요. 한마디로 그는 지나치게 욕심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안병기는 영화에 빈자리를 남겨두지 않습니다. 마치 관객들이 겁먹지 않을까봐 조바심을 치는 것 같아요. [폰]은 굉장히 빽빽한 영화입니다. 조금이라도 빈자리가 있으면 징그러운 유령들과 끽끽거리는 음향효과를 채워넣거든요.

좋은 호러 영화는 그래선 안됩니다. 공포는 그렇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니까요. 늘 하는 말이지만, 호러 영화라는 장르는 섹스나 댄스와 같습니다. 적당히 당기고 풀어주는 맛이 있어야죠. [폰]은 전희없이 오르가즘만 잔뜩 끼워넣은 2류 포르노처럼 느껴집니다. 감독이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영화의 구성 역시 감독의 능력을 살짝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원조 교제와 스토커 이야기가 삽입된 건, 관객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중간에 적절한 국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듯 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스토커 이야기가 눈가림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걸요. 애당초부터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스토커 이야기와 유령 이야기가 만나는 장면의 힘은 당연히 떨어집니다. 관객 시선 돌리기의 실패는 다른 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은 영주가 우연히 선택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호정과 남편 창우가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걸 구성상 눈치챌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뜻밖의 결말'에 의지한 영화의 효과는 힘을 잃게 되지요. 쓸데없이 추가되거나 편집이 적절치 못한 장면들도 많습니다. 특히 중반 이후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세 차례나 나오는 회상신들은 너무나도 반복적이라 짜증이 날 지경입니다. 그렇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장면들이었어요. 이미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배우들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원에서부터 아역 배우 은서우까지 모두 똑같은 연기를 하고 있어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고함을 꽥꽥 질러대는 거죠. 어떻게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억지 연기로 일관하는 거죠? 종종 이들의 대사 구사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건 부차적인 문제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긴, 그건 각본 문제일지도 모르죠. 전체적으로 대사가 뻣뻣한 문어체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경험 부족한 배우들의 발목을 잡는 도치법이나 생략법이 필요 이상으로 남발되는 것도 문제고요.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대사는 실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입달린 장르 관습들이 기계적으로 중얼거리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인 캐릭터들도 힘이 떨어지고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주인공 유령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의 것들은 대부분 테크닉의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유령은 어쩔 수 없는 핵심적 실수입니다. 한마디로 전혀 호소력이 없어요. 훌륭한 유령 영화의 주인공들은 공포심만큼 다른 감정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식스 센스]나 [악마의 등뼈]에 나오는 유령들이 그처럼 성공적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여러분 눈 앞에 '한숨짓는 아이'나 '텐트 유령'이 불쑥 튀어나온다면 여러분은 당연히 겁을 집어먹겠지만 어떻게든 그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유령들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 때문에 전체적인 작품의 정서적 파장이 훨씬 넓어지고 작품은 호소력을 띠게 됩니다. 그렇다면 [폰]의 유령은 어떤가요? 툭툭 튀어나오는 장면들은 음향 효과 때문에 무섭지만 그뿐입니다. 결정적으로 이 유령은 너무나도 밥맛입니다. 동정은 전혀 안가고 비명을 지를 생각도 들지 않는군요. 제가 주인공이라면 혀를 툭툭차며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얘야, 짜증난다. 저리 가." 유령에 대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감정으로 연결됩니다. 아마 감독은 그 캐릭터의 혐오스러움이 살인 동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런 걸 인정한다고 해도 영화의 떨어지는 호소력이 다시 솟아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폰]은 아이디어도 많고 자체적으로 설 수 있는 독창성도 충분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가능성만으로 끝나 버린 것 같군요. 안병기 감독이 [가위] 이후 특별히 발전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였던 [가위]보다 못하게 느껴져요.

기타등등

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밤에 불을 안켜고 다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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