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파라다이스 빌라>를 보고나서 들은 생각은 "시시한 슬래셔 무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종원'이란 감독을 생각해보니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박종원 감독의 전작인 <송어>는 참으로 뛰어난 심리드라마였습니다. 비록 흥행에서는 인정을 못 받았다지만 폐쇄되다시피한 깊은 산골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조련하는 솜씨는 볼거리없는 조용한 영화임에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지요.

<파라다이스 빌라>는 철저히 <송어>의 연장선위에 놓여있는 영화입니다. <송어>의 양어장은 빌라라는 공간으로 제한되었고 이 공간안에서 감독은 헐리우드의 슬래셔무비의 공식을 도입하여 살인게임을 벌입니다. 거기에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주어지는 100분이란 시간제한은 충분히 매력적이죠.

이 빌라안의 사람들은 참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정수기를 팔기위해 물탱크에 흙을 쏟아붇고 주차공간 하나에 신경질을 내는 사람들. 영화속의 현실이지만 우리 주위에서 충분히 있을법한 아니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충분히 잘 잡아내며 <파라다이스 빌라>는 심리드라마로 상당한 수준의 조련솜씨를 과시합니다. 특히 우연히 사람을 죽인 불륜의 남녀(하유미, 이진우)가 겪는 심리축은 영화의 다른 재미를 줍니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는 심리보다 살인이라는 과정을 중심에 놓고 있지요. 그러나 그 중심축을 이끄는 살인자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는게 문제입니다. <스크림> 같은 헐리우드의 호러영화에서 보여지는 절대적 공포감은 상실된채 어찌보면 어이없는듯한 살인의 나열에 그치고 맙니다. 거기에 약간은 어이없고 설득력약한 연쇄살인의 장면들에 옥탑방소녀와 살인자의 교감이라 일컬어지는 대목에 이르면 영화는 드디어 종잡을수 없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합니다.

<파라다이스 빌라>를 보러가며 슬래셔무비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분명히 실망을 할만한 영화입니다. 살인장면은 공식을 따르는듯 하지만 거칠고 설명이 부족하죠. 절반의 성공이지만 나머지 절반의 실패가 너무 눈에 확연히 들어오기에 절반의 성공이 얼마나 눈에 들어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영화속 살인동기에 대한 것만은 상당히 생각해볼만하다고 생각되네요. 온라인게임에서 아이디를 해킹하여 아이템을 모조리 훔쳐간 상대에 대한 복수. 아마 요즘같은 세상에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소재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보태기: 느닷없는 장면이 많다는 점에서 <송어>의 마지막에 별다른 설명없이 복구된 자동차의 타이어가 생각나더군요. 그 정도면 필요없는 생략은 아닌 듯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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