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서구의 에이즈 위기는 스톤월 항쟁 이후로 동성애 운동의 물길을 바꾸는데 가장 큰 요소가 되었다. 에이즈라는 세기의 역병의 주범으로 몰리게 된 동성애자들에겐 어떤 의미로든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가 절실해졌고, 이 시기서부터의 비디오 액티비즘은 오늘날의 '퀴어 시네마'를 구성하는 커다란 줄기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가 카메라를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차이를 강조하는 퀴어 정치학의 최전선으로 뛰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버레이크 라이프>는 에이즈 시기의 다큐멘타리의 정치성에 죽음과 사랑을 성찰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진 한 편의 드라마이다. 주인공이자 제작자인 탐 조슬린과 피터 프리드먼은 햄프셔 대학의 스승과 제자 사이이며, 함께 살다가 에이즈로 죽어간다. 이들이 남긴 기록물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완성이 되고 선댄스를 비롯한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이 드라마틱한 소재가 가식과 환상의 외피를 벗어 던지는 순간, 떨칠 수 없는 잔인하고 끈질긴 현실이 가슴을 저며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의 순간까지도 놓치지 않는 카메라의 시선과 병이 악화되면서 달라져가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도 만들지만 <실버레이크 라이프>는 단순한 퀴어영화나 에이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뛰어넘는 진실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진실성이 '사랑의 위대함' 등의 미사여구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 안에 살아 있는 엄연한 현실과 지금은 없는 그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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